나의 이야기

할애비의 자장가

작곡가 지성호 2019. 3. 4. 05:03

어쩔 수 없이 귀국길을 서둘러 떠나는 새벽,

아내와 더불어 장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서는데 코끝이 시큰 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다시는 못 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장모님도 아내도 모두가 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공항 가는 길, 아침 일곱 시인데도 곳곳이 정체되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유명한 트래픽이다.

양방향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차량의 물결이 휑한 마음 때문인지 허허롭고 덧없게만 보였다.



길고도 긴 비행-그 좁은 공간에 갇혀 견디고 견뎌 겨우 6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남은 7시간이 형벌처럼 공포로 다가왔었다.

가까스로 아들네 집에 몸을 부려 잠을 청해봤지만 물먹은 솜처럼 초췌해진 육신은 쉬 잠들지 못해 뒤척였었다.

하룻밤을 지나도 여전히 비행기 안에 있는 갇혀있는듯 귀는 웅웅거리고 몸은 흔들렸다.

 

아침을 먹고 이니가 졸린 듯 하여 가슴을 토닥이며 내 기억속의 동요 한곡을 자장가삼아 불러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귀밑머리 하얗게 쇤 할애비의 목소리는 노독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갈래갈래 쪼개진다.

늙은 노새의 지친 울음소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 이니는 팔 베고 스르르르 잠들지 못한다.

오히려 즐거워 죽겠다는 듯, 발을 동동거리고 팔을 휘저으며 온몸으로 기쁨을 작열시킨다.

할애비는 손안에 펄떡이는 피라미처럼 어린것의 약동하는 생명에 찌릿찌릿 감전된다.

내 마음속에 아직 유년의 기억이 선연한데 나는 어느새 할애비가 되었다.

이제 서산의 노을처럼 긴 그림자를 끌며 퇴영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서둘러 늙어가는 중이다.

어떤 시인은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몰려오는 졸음에 겨워 힘이 빠져나가는 손을 겨우 겨우 토닥이며 이 어린 것이 맞닥뜨릴 세상을 생각한다.

그래, 너의 힘찬 발짓으로 그렇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아가렴!

이니야, 할애비는 이 나이가 참 좋단다.

거친 세상의 갖은 풍랑을 헤쳐 왔기에 기슭을 찰랑이는 고요를 아는 나이란다.

길게 누워 한가롭게 되새김질하는 늙은 소의 망연하고 순한 눈빛으로

초원의 송아지처럼 깡충거리는 너를 바라보며 살고 싶을 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