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부터 전주시립교향악단과 리허설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오는데 사연도 많고 고비 고비 힘도 부쳤다.
기획부터 작곡, 관현악 편곡, 합창지도, 출연자 및 출연단체 섭외, 계약, 프로그램 작성 등등 ...
팜프렛은 자그마치 24페이지나 된다.
뭐든지 다 혼자 해야 했다.
끝없는 일속에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때도 많았다.
100년만의 음악회가 결국은 올라가는구나!
모쪼록 사고 없이 성황리에 끝나기만을 바랄뿐이다.
출판사 근무시간이 되면 “클레식의 향연”을 “클래식의 향연”으로 교정지시를 해야겠다.
그렇게 보고 또 봐도 틀리는 곳이 나온다.
여기도 또 나오네.
전주고등학교 100주년 기념동문합창단을 전주고.북중 개교 100주년 기념 동문합창단으로 바꿔야지...
페이스 북에 이 글을 올렸더니 멕시코 꼴리마 대학의 림수진 교수가 댓글을 달았다.
이후로 전개되는 실시간 댓글에 이 음악회에 대한 내 심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이 음악회가, 역사로 남길 바라겠습니다" 라는 답글에서
내 솔직한 심사가 그만 노출돼버리고 만 것이다.
거의 충동적으로...
여과없이 그대로 붙여보겠다.
Su Jin Lim 드디어, 이 일도,, 그 끝을 향해 가는가 봅니다. 사연도 많고 고비고비 힘도 부치셨다는 대목,, 그리고 결국 혼자 다 하셔야 했다는 대목,, 무엇보다도,, 읽고 또 읽어도 팜플렛에 오자가 나온다 하는 대목,, 그 모든 대목들 하나하나가,, 절절합니다.
저는 지난 열 다섯 달 동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수 십 번을 쓰고 지우면서 만들어진 글들을 ,, 다시 또 두 달을 훌쩍 넘기면서,, 글자 한 자 한 자와 씨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을 열 명,, 아니 스무 명을 붙인다 한들,, 결국,,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삼일 밤 낮으로 고민하고,, 오타와 오자를 찾아내고,, 글의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고,, 잘못된 수치를 찾아내고,, 잘못 된 문장부호를 찾아내고,, 점 하나,, 컴머 하나,, 수 십 번 고민하면서,, 그렇게 찾아내는 사람은,, 결국,,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 정말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 뿐이구나,, 정말 그 일을 해야 하는 그 사람,, 뿐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입니다.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나오는 미흡한 부분에 절망하다가,, 교수님 글을 보고,, 다시 힘을 얻습니다. 제 일도,,언젠가는,, 끝이 나겠지요,, 100년 만에 올라가는 음악회가,, 아름답게,, 순적하게,, 잘 치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Su Jin Lim 또한 이 음악회가, 역사로 남길 바라겠습니다.
지성호 고맙소, 림교수!
이 음악회가 역사에 남길 바란다는 말에 내 얼굴이 다 뜨거워지오.
동문이라지만 살아온 문화적 환경과 삶의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 특히 대중음악이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 틈에서 많이 외로웠다오.
대중사회에서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음악은 그 성향이 극히 소비적이라 거품이고 바람일 뿐이라오.
100년만의 음악회라면 뭔가 100년을 담보하는 중량감과 기념비적 의미가 있어야 할 터인데 ...
초지(初志)에서 많이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절충이라는 이름으로 지향점 없는 음악회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부끄럽소.
적어도 전주고가 지역과 나라에 숱한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이라면 그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100주년에 걸맞은 문화행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나라면 말이오.
한 2년 전부터 100년을 견디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이어가야 할 학교 공동체의 자긍심과 미래를 노래할 대본을 능력이 되는 동문이나 아니면 외부에 위촉하여 정성으로 만들고 내가 주야로 곡을 붙여 오페라가 아니어도 적어도 칸타타랄지, 그 외의 적합한 연행형식으로 무대에 올렸다면 오페라 작곡가로서 내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오.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그 영원성을 획득하여 인류와 함께 불멸할 것이오.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도 그렇고 2002년 월드컵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전주시에서 나에게 위촉한 대서사 음악극<혼불>은 그 가락이 끊어지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 재작년 전북대학교 개교70주년에도 올려졌었다오.
우리가 언제나 소비를 부추기는 산업사회의 천박함을 벗어나 소비하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거듭날 수 있을지....
Su Jin Lim 이 음악회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당일 그 음악회에 오는 사람들,, 그 모두가,, 평생에,, 딱 한 번 보게 될,, 100년 만의 음악회일 것입니다. 그나마,, 살아,, 개교 100주년 기념 음악회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년 6월 15일 음악회를 보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2119년 200주년 음악회를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교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듯,, "100년 만의 음악회"는,, 정말로,, 운이 좋게도 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2019년까지 살아 만나게 되는 음악회일 것입니다. 100년이나 이어진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과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 삶에서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기에, 저는 그 100년의 가치가,, 참 부럽습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평생에 딱 한 번 보게 될 "100년 만의 음악회"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두고 진중하게 생각하였다면,, 결코 가볍게 한 두 시간 즐기고 마는 음악회로 여기진 않을 것입니다. "100년을 담보하는 중량감"을 마음에 새기고 느껴야 할 것입니다.
Su Jin Lim 기억은 사라질 것이지만,, 누군가의 기록은 아마도 다시 100년이 흘러 200주년 음악회에 닿아도 여전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번 음악회를 본 사람들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없겠지만, 그래도 남겨진 그 기록 속에서 "100년을 담보하는 중량감"을 마음에 두고 깊이 고민하고, 고민하였을 한 사람의 고통스런 흔적 또한 보여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성호
지성호 역사 안에 사는 사람과 역사 밖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오, 난 팜프렛에 정성을 들여 음악회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소. 왜? 백년만의 음악회니까. 소리는 생성과 동시에 사라져도 기록은 남겨질 것이오. 추하면 추한대로 그 반대면 반대인 대로 200년만의 음악회에선 백년만의 음악회는 어땠을까? 궁금해 하며 그 기록을 찾고자 할 것이오...
Amy Kim 정말 수고가 많으세요~
그 애통하는 마음과 말씀 하시는 마음과 뜻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확연하게 인간이라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부분에서조차 30%가 넘는 계층이 있는 사회인데 느끼는 감정을 오락으로, 대중음악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각각의 그 취향도 인정 해야겠죠. 다만 그게 이렇게 귀한 기념비적인 행사에서까지 참…….그저 누구나가 어느 오페라의 한 가락을 흥얼거리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쌓여서 흉내라도 내기엔 너무도 먼 얘기이잖아요. 경제적인 선진국을 이뤘다고들 자부심인지 뭔지 다들 그런 말들을 하지만 너무도 미성숙하고 천박한 모습들,,, 차마 내 고국 내 민족들에 표현하고 싶지 않은 단어이지만 늘 느끼는 안타까움입니다. 사회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나서야할 지식인들조차 삶에서는…….
Amy Kim 그러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부끄러워도 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셨으니 다 알게 될 거예요
지성호 오잇! 힘이 나오! 내가 1부에 출연하는 연주자들-다들 세계무대에서 그 예술적 성취를 자랑하는 분들에게 제발 대중에게 익숙한 곡으로 레퍼토리를 정해 주세요 부탁하고 또 부탁 했다오.
워낙 압박을 받는 터라…….
그 분들에게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노? 이 사람 작곡가 맞아?" 소리를 들을 만 했소. 그분들에게는 거의 강제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오.
나로서는 이제 이런 일은 다신 안 할 것이오.
초야에 은둔자로, 명리에 목숨 거는 작곡가가 아니라 무명의 작곡가로 살 것이오.
책을 벗 삼으며, 좀 게으르게 말이오…….
Su Jin Lim 교수님께서 서신 곳에서 느끼셨을 절망감, 당혹감, 그리고 외로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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