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나는 책을 쓰고싶다는 열망을 가졌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전북대학교 큰사람인성교육원에서 강의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때 작성한 강의록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책을 냈으면 한다는 말을 몇 번인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듣기 좋은 말이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한편 “마음은 원이로되 내가 감히..”라는 주저함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정작 이일이 현실이 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한 이틀 열심히 쓰면서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의문이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가?”입니다.
대상은 음악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입니다.
도와주시는 셈치고 고견을 듣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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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랜 세월, 바그너에 관한 자료를 이런저런 방편으로 모아놓은게 종갓집 묵은 살림처럼 너무 많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하여 언젠가는 일목요원하게 정리를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일의 계기로 정리를 하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많은 부분 중첩되기도 하고 음악뿐만 아니라 바그너 당대의 문화전반과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까지 그 외연이 확장되어 자료를 뒤적일수록 아포리아의 미로를 헤매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자료는 너무 없어도 문제이고 많아도 문제이다.
바그너의 악극
바그너는 보통사람에게 로엔그린의 <결혼행진곡>이나 탄호이저의 <순례자의 합창>정도로만 존재할 뿐 그 실체의 진면목에 다가가기가 녹록치 않은 작곡가이다. 바그너의 산은 장대한 만큼 골도 깊고 뫼도 높다. 어지간히 올라서는 전체의 조망조차 버겁다.
지루한걸 절대 참아줄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오페라가 쉬 다가가지 못하는 장애물 중 하나가 러닝타임이 길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작곡을 위촉하는 쪽에서 제발 2시간을 넘지말라는 신신당부를 받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하나의 이야기가 발단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찌 2시간에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말이 아닌 노래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작품의 크기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본디 아름다움이란 ‘크기와 질서’에 있는 법이어서 너무 작아서 부분들의 비례를 알아볼 수 없거나, 너무 커서 전체의 통일성을 한눈에 볼 수 없는 건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니, 한 번에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객이 쉽게 통관(通觀)할 수 있는 작품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에서 대략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3~4시간 안에 무대에 올리는 정도가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지라도 심리적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2시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합리적 판단일수 있겠다 싶어 필자로서도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는 어떨까?
<파르지팔Parsifal>의 전막공연시간이 인터미션 포함 5시간 30분정도이고 음악사상 최대의 작품으로 기록되는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공연시간이 무려 15시간이나 소요되니 놀랍지 않은가. 이 때문에 이 오페라는 4일 동안 나누어서 공연하게 된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이토록 긴 이유는 본인이 직접 쓴 대본자체가 함축적이거나 암시적이 아니라 처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서술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그너가 자기만의 오페라를 작동시키는 복잡한 얼개들- 예들들면 무한선율이랄지 라이트모티브랄지 등이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경계를 모호하게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 가수 하나가 등장하여 귀에 쏙 엥기는 선율도없이 밋밋한 노래를 5분,10분 계속해서 부른다 생각해보라. 바그너를 피상적으로 알고있는 감상자 입장에선 손사레를 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점에서 오페라를 철저히 개혁한 사람이다. 바그너의 일생일대의 목표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시와 음악과 무용과 같은 제 예술의 통합, 즉 총체예술의 성취다. 바그너는 위대한 종합예술이었던 그리스의 음악극이 이기적인 이유로 분열되었다고 개탄하면서 모든 예술의 유기적인 통일로 미래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이때문에 바그너에게 오페라의 아리아같은 것은 오로지 음악만을 위한 분파적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고 개혁의 대상이 된다. 바그너는 음악만을 위한 이론이나 형식을 넘어 고대 그리스의 뮤지케(Mousike)를 구현하고자하는 자기만의 오페라를 음악극(Music drama)이라고 불러 차별화했으며 이것을 가지고 독일민족의 국민적 통일을 꾀하고 나아가서는 전 유럽을 통일하자는 큰 그림을 그린 작곡가이다.
이제부터 필자도 바그너의 오페라를 음악극으로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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