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으니까 아마도 예닐곱 살이었지 싶다.
간 밤 폭우에 논둑이 터져 손바닥만 한 붕어가 누런 배를 드러내고 퍼덕이는 길에는 어른들이 어깨에 삽을 메고 저마다 자기 논을 살피러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동 골 우리 밭에 가려면 내를 건너야만 했다.
지경을 넓힌 성난 황톳물이 폴짝 폴짝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를 삼키고 그야말로 노도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왜 거길 건너야만 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나는 무동 탄 삼촌의 머리를 결사적으로 껴안고 공포에 떨며 악악거렸었다.
어린 눈에 개울은 바다와 같이 넓게 보였고 황토 빛 갈기를 세운 숱한 물굽이들이 어지럼증을 일으켜 맴돌이를 하고 난 것처럼 하늘과 땅이 막 뒤집히는 것이었다.
그런 나를 삼촌은 달래기 반, 놀리기 반 재미있어 하였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 고향을 방문했을 때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를 그토록 공포에 떨게 했던 내는 스무 걸음도 채 안 되는 둑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실개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 애가 돌도 안 되었을 때 구이저수지 상류 쪽 망상마을 냇가로 물놀이를 갔었다.
집에서 씻길 때마다 물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넓은 개울에서 맘껏 활개 치게 할 요량으로 안고 들어갔더니 아주 발버둥을 치고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요란한 몸짓으로 늦여름 말매미와 같이 결사적으로 우는 것이었다.
그 아들이 늦게 양양 바닷가로 피서를 가서 동영상을 보내왔다.
물을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온갖 물놀이 장비와 스윔 재킷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바다에 들어가려는데 애가 발악을 하고 울어 할 수 없이 호텔방으로 철수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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