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라니의 선한 눈빛을 기억하며

작곡가 지성호 2019. 11. 23. 16:49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그동안 산적한 해야 할 일들로 두문불출하다가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이 천북 시온 들꽃교회 김영진 목사님을 방문했다

신죽리 수목원 볕 바른 카페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고 김지영 사모님께서 내려주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서 밀린 담소를 나누는데 통창으로 거침없이 쏟아붓는 햇볕이 얼마나 따순지 잠시 냉방장치를 가동해야 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낮 기온이 16도를 웃도는 기가 막힌 날씨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아 그 끝 모를 깊이에 성스러움과 거룩함이 어려있다.

신의 그윽한 눈길이 온 누리에 충만한 것이다

바람마저 졸음에 겨운 고양이처럼 미풍조차 느낄수 없이 잠잠하다.

 

목사님은 궁리 항으로부터 오천항까지에 이르는 바다와 해풍이 끼치는 언저리를 사랑한다

나를 볼 때마다 이 일대의 곳곳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목사님의 마음은 언제나 바쁘시다

제일 먼저 학성리 바닷가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지인의 집에 들렀다

이 집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사람들이 꿈꾸는 모든 열망을 뛰어넘는다

소나무 숲 사이에 바다를 온통 안은 볕 바른 마당과 하얀집은 햇살에 눈 부시고

원두막을 개조한 별채는 청청한 대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길게 누운 안면도를 바라보는 창망한 바다엔 윤슬이 찰랑찰랑 그리움으로 반짝인다

바다에 면한 도로변이지만 사람들의 시선 위에 있어 토박이들조차 늘상 지나다니는 언덕배기에 설마 이런 집이 있을까 하는 집이란다.








점심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맨삽지 섬이 바라보이는 학성리 매운탕 집에서

바닷냄새가 고스란히 배어든 싱싱한 우럭탕으로 오랜만에 맛나게 먹었다.




점심 후 이 동네 어느 귀퉁이, 1960년대 지어진 양조장을 개축하는 현장에 들렀다

공들여 벽돌로 쌓은 굴뚝이 범상치 않은 이 집은 오랜 세월 손때 묻은 원형을 살리면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문화공간과 생활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재화와 품을 들이는 것이다

생각 없이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 낯선 일에 힘이 들고 더디더라도 이렇게 가는 것이 백번 옳지만,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이다.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이 까다로운 공정은 복원과 재생에다가 보이지 않는 미래가치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불사하는 건축주의 재력과 의지가 따라야 하고

시공자 역시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고도의 문화적, 시대적 안목이 있어야한다

일종의 동네를 재생하는 사업의 아이디어는 목사님이 내시고 건축주는 좀 전에 들렀던 그림 같은 집의 주인장이시란다

이처럼 목사님의 상상력은 손혜원 의원이 울고 갈 정도로 대단하시다

목사님은 교회 안의 도그마에 갇혀 공허한 아멘 할렐루야만 외치는 분이 아니라

날로 피폐해져 공동화(空同化) 돼가는 지역공동체의 활로를 열기 위해 계몽기의 상록수와 같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성장 신화와 구령신앙에다가 기복신앙에 매몰되어 정작 농촌공동체에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쪼그라져가는 기성교회의 처절한 반성에서 얻은 방향성이 아닐까 추측한다

나는 목사님의 이런 목회지향성을 교회의 진정한 세속화라고 명명한 바 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교회 본연의 영성에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 따르미로서의 실천의 자리는 교회를 통해 세상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세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 사랑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니

교회의 진정한 세속화라는 말이 한갓 수사로서 입발림소리가 아니다.


그다음 행선지는 요즘 경향각지에 입소문이 나 핫한 장소로 떠오른 우유카페이다

우유가 생산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쉽게 관찰과 체험을 할 수 있고 시음할 수 있는 창고형 복합문화공간이다




여기서 또다시 목사님과 농촌을 살리는 문화사역에대한 담론이 부드럽고 구수한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벌어졌다

목사님은 무엇보다 문화적 접근을 우선시하여 초등학교, 중학교에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활동의 영역을 확장시켜왔다

이 오케스트라 운동은 칠,팔십드신 어르신들에까지 예외가 없다.

평생 거친 노동으로 굳은살 박힌 손에 바이올린이나 첼로에다가 플릇 클라리넷, 색소폰을 들게 하고 동네 오케스트라 일원으로 참여시킨다

이들은 TV에서나 구경하던 남의 일 인줄만 알았던연주자가 되어 연주 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으며

국회의원나리 시장나리, 군수나리에다가 마누라며 남편이며 손주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박수를 받는다

염천에 논두둑, 밭두둑을 기며 팥죽처럼 땀 흘리는 짐승 같은 삶에서

아름다운 질서의 세계에 편입되는 우아한 인간이 되어 문화를 향유하고 실천하는 삶이 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고도의 예술성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다

거칠고 투박해도 나름의 완성도를 향해 노력하고 궁리하면서 실존의 성취를 맛보는 어엿하고 존엄한 인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단다

이 문화 활동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쌍방소통을 매개한다는 것이다.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생산자는 모든 노력을 생산품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울이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없어 활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산품의 질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의 감성에 다가가는 마케팅이 부족하다면 그 노력은 무위로 그칠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의 브랜드 가치창출이나 첨단화된 마케팅 전략이 전무한 농촌의 실상은 언제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님은 온새미로 축제같은 것을 열어 도시 사람들을 농촌으로 자연스럽게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정성으로 마련한 생산품을 선보임으로 쌍방 간에 지속적인 신뢰를 쌓게 하고 그 기반에서 안정된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 중간에 우리가 바닷가 집이라 부르는 이명숙사모님이 오셨다

이분은 바닷물이 기슭을 찰랑이는 송림 무성한 산속, 외딴 집에 사시는 분이다

최근에는 숙이뜰이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여셨다

사모님의 막무가내에 손잡혀 숙이뜰로 향했다

못온지 몇 년새에 산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사모님 댁에 이르는 외통수 길 몇 킬로미터가 여기저기 길이 뚫리고, 뚫린 만큼 솔 숲이 헤성해졌다

당장은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은 게 아니지만 곧 새로운 숲속의 생태계가 복원 될 것이다

그 밑엔 온갖 산채가 심겨져 있다

오로지 사모님의 억척이 일궈낸 결과물이었다

이 분의 남편분은 삼성중공업 계열사 사장님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한 삶을 사셨지만

도시의 무의미함을 떠나 고향땅 인근에 산을 사시고 산림을 가꾸시며 은퇴후의 꿈꾸던 삶을 개척하신 분이다

2층 객실에 둘러 앉아 고독하고 외롭지만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은둔자들의 공동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길이 고통으로 점철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단지 잉여인간으로 전락하지 말고 소박하지만 격조 높은 노년의 삶을 찾아야만 한다

행복은 신기루와 같은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야 하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바다에 노을이 진다

태양은 모처럼 화려했던 오늘의 위엄을 바다에 투영하여 섬광처럼 번쩍인다

눈이 부셔 오래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빠르게 꼬리를 거두며 안면도 산 능선 뒤로 꼴깍 침몰하고야만다

솔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급속하게 빛을 잃어 가더니 소나무의 가지와 잎이 순식간에 검게 변한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지근거리의 천북 굴단지로 저녁삼아 굴 칼국수를 먹으로 가는 길에 날렵한 고라니 한 마리가 나는 결코 늑대가 아니라는 듯 멈춰 서서 잠시 바라보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선한 눈빛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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