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식 교수
<클래식 음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소리내, 2020)는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지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 오페라 작곡가이다. 음악전공자, 특히 실기전문가는 독서내공이 일천하고 앎과 글에 취약하리라는 편견을 이 책은 통쾌하게 깨버린다. 저자의 풍성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이 빚어내는 서구 클래식 음악천재들의 사랑과 사유 세계는 생짜배기 사람냄새를 풍기며 깊은 울림을 빚어낸다.
나 역시 클래식음악 애호가지만 이 책을 통해서 슈베르트와 쇼팽, 말러와 베를리오즈, 바그너와 푸치니 등이 사랑한 여인들과의 파란만장한 인연과, 그 틈새로 개입한 화가 클림트와 모딜리아니, 괴테와 보들레르 같은 문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등과 엮인 당대의 역동적인 인간관계를 비로소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또 모짜르트 신화화의 그늘 아래 왜곡된 살리에리가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키워낸 당대의 뛰어난 음악교육가였다는 사실도 새로 배웠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가난한 집시 청춘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으로 나도 가끔 따라 부르고 즐겨 듣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과 그 전후의 스토리 전개에 얽힌 디테일도 새로 발견했다.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로 녹여내 재구성한 서구 클래식 음악천재들은 그 '천재'의 신화에 많이 가려진 그들의 인간적 욕망과 음악적 열정, 일상적 애환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의 음악이 고전으로 승화된 이면에 인문학 전반의 심오한 통찰과 경험이 통전적으로 개입한 다양한 흔적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있다.
오늘날 다소 피상적 재능이나 기예로 전락한 클래식 음악인들의 현실을 성찰하면서 이 책은 음악과 음악가의 심연에 왜 인문학적 자양분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역설적인 깨우침을 더한다. 또한 음악가로서의 치열한 구경적 삶이 '생활을 살리려 하면 예술이 죽고 예술을 살리려 하면 생활이 죽는' 오래 묵은 모순적 이치를 외줄타기의 긴장으로 살아내는 지혜를 이 책은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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