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뜰 안의 나무들이 이파리를 온통 떨구고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입립하여 길고 긴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욕망처럼 차오르던 무성한 것들이 죄 떨어지고 버려지는 때인지라 그 성긴 틈새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주말에 손자가 내려와 뛰놀던 마당의 뒷정리를 하다가 우연 찮게 장미와 눈이 마주쳤다. 좀 뜨악한 게, 이미 서리도 몇 번인가 내렸고 영하로 곤두박치던 날도 엊그제인데 장미는 여전히 붉었고 이파리조차도 녹색을 유지한 채였다. 색조를 잃어버린 마당 한구석, 양지바른 곳에 보란 듯이 핀 장미가 하, 신기해 다가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꽃을 피우기 위해 공들인 시간 때문이라 말했지만, 난 우리 집 장미에 대해 손톱만큼도 공들인 바가 없다.
이 장미로 말할 것 같으면 아파트로 이사 나간 전 주인이 가꿨던 꽃인지라 애시당초 나에게 길들여진 꽃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장미의 존재에 무심했고 오늘의 만남은 발견에 다름아니었다. 우선 매콤하고 고혹적인 향을 바라고 가까이 코를 들이밀었더니 언뜻 기억 속의 향내만 어릴 뿐, 이미 힘이 다한 꽃잎 몇 장만 하르르 고개를 떨구고 만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장미 가시에 찔려 가장 시인답게 죽었다는 릴케의 에피타프이다.
오늘은 온종일 햇볕 바른 날, 장미야 너의 포도주 빛 눈꺼풀 아래 옥수수 알갱이 같은 햇살이 촘촘히 파고들어 따스한 조름에 겨웁구나.
문득 떠오른 노래 하나,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그 향기가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베르너의 들장미이다.
독문학자들은 아마도 이 번역된 노랫말의 상당 어구에 토를 달고 시비를 따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50여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이 지금껏 흥얼거리는 이 노랫말이 나에겐 진리다.
라떼는 피아노가 아주 보기 드문 귀한 악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조사의 목적이 의심되는 가정환경조사 내역에 피아노가 있는 집이 전교에 몇 집이나 되었을까? 초등학교에서의 풍금수업을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해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로 이동하여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으로부터 반듯한 음악 수업을 받게 됐을 때, 비로소 그토록 합격하기 힘들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된 성취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흰 살결에다가 통통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송진상 선생님(아, 나는 왜 이분의 존함을 여태껏 기억하는 것이냐!)의 능수능란한 반주에 맞춰 “ 작은 새 노래하니 봄이 왔어요...”노래 할 때 어떤 학생들은 흥에 겨워 교탁 쪽의 빈 공간으로 뛰쳐나가 동산의 사슴처럼 깡쫑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었다. 선생님은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냐! 교실의 참다운 풍경은 바로 그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것들을 소위 일류 중학에 넣기 위해 늦은 밤까지 교실에 묶어두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횟수를 통제하여 바지에 오줌을 싸는 학생들이 많았었다. 그런데도 어린것들은 매를 맞는 것이 두려워 말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날, 터질 듯 차오른 방광의 압박에 허벅지를 모으고 진저리를 치다가 기어코 일을 저지르면 뜨뜻한 것이 바지를 타고 내려가던 그 참담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지금까지도 소름 돋는다.
6.25라는 동족 참상의 뒤끝이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던 때였던지라 아이들은 전쟁놀이와 같은 거친 놀이와 거친 언어 속에서 봄날 비 갠 후 고개 내민 고사리처럼 무리 지어 저절로 커갔다. 나는 초 등 6학년 때 본래적 교육이 실종된 입시지옥을 겪고 나서는 공교육과 선생님이 끔찍하게 싫어 중학교부터는 학교를 마지못해 다녔다. 소심한 탓에 남들 보기에 얌전해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공부는 머릿속에 든 걸로 겨우 낙제나 면할 정도고 도서관에서 맘껏 독서에 탐닉하며 보냈다. 강렬한 책의 유혹은 시험 기간이면 어김없이 도지는 고약한 질병이었다.
“갓 피어난 어여쁜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이 대목에서 유별나게 예민하고 섬세한 심장이었던 아이는 번번이 눈물짓고 말았다. 들 섶 보석처럼 빛나는 한 떨기 장미의 고혹한 향기에 이끌려 꽃잎 겹겹이 에워싸인 신비, 노오란 꽃심에 빨려드는 아이.
참으로 그때는 <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던 시기였다. 말 그대로 음악은 “꿈의 나라”,“하늘 영혼들의 언어”이며, “믿음의 나라”였다. 무한한 동경을 자아내며 천상의 세계를 이 세상으로 끌고 오는 음악의 능력은 나를 서슴없이 그 길로 인도했다.
알다시피 이 시는 괴테가 22세 때 쓴 시이다. 이 시가 작곡가마다 음악의 영감을 자극했는지 무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곡을 지어 붙였다. 그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곡은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의 궁정극장에서 합창 감독으로 일했던 베르너(Heinrich Werner, 1800-1833)의 곡과 슈베르트의 곡이 유명하다. 슈베르트의 곡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원어로 배웠기 때문에 지금도 가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Sah ein Knab' ein Röslein stehn...”시는 같지만 노래는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