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있는 오페라가 위촉단체의 사정으로 공연계획이 무려 한 해가 늦춰졌다. 당겨진 활시위가 맥없이 풀어져 버린 듯 동동거리던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이 여유를 곡의 밀도를 높이고 탈고를 향해 진력해야 하건만 웬걸, 기다렸다는 듯이 나태란 놈이 발목을 잡는다. 갑자기 읽고 싶은 책도 많아지고(실제로 15권을 주문했다) 두물머리를 조망하는 수종사 원경이 그렇게 좋더라는 페친의 글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런다고 없는 길을 헤쳐가며 넘어야 할 첩첩산중을 생각하면 활개 치고 놀 수도 없다.
그 절실하던 날들이 하룻밤 된서리에 폭삭 주저앉은 한삼 넝쿨처럼 흐물거린다.
다시 한번 생각하거니와 작품을 남기려면 절박해야 한다. 결핍은 창조의 바퀴를 굴리는 동력이다.
남쪽 면이 온통 유리창으로 개방된 내 2층 작업실은 지대조차 높아 피곤한 눈을 들면 몇십 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 년 이상을 자발적 위리안치 속에서 곡을 써야 하는 나로서는 이것이 축복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하다. 오늘같이 황금빛 양광이 대지에 아른거리면 가파른 둥지의 독수리처럼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 어쩔 수 없이 날갯죽지가 근질거린다. 어쩌겠는가, 마음이 가는대로 신발 끈을 매고 산책에 나선다.
동네 아래 화촌교를 건너면 바로 만년 들녘이다.
올가을 잦은 비로 이제야 추수로 분주하다. 이 들녘을 바라볼 때마다 왜 하필 만년들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목천을 따라 서편 뱀배미 들에 이르기까지 아득하게 펼쳐진 기름진 들녘은 천년만년 물 걱정 없이 벼농사에 최적화된 곳이기 때문일까?
들 바람 치는 천변에 하얀 억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이로 참새떼가 돌멩이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그래! 저 들 바람처럼 나는 어떤 그물코에도 엮이지 않는 자유를 여태껏 목말라 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나에겐 가당치 않은 열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얗게 머리가 세고 나서야 가까스로 그 까마득한 것을 쟁취했다. 주어진 시간을 내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유, 얼마나 목마른 것이었더냐!
돌이켜보면 일용할 양식을 위해 아등바등해야 했고 사하라사막의 늙은 낙타와 같이 버거운 멍에도 매야 했다. 나희덕 시인의 절창처럼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의 질척거리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늙었음을 자각하고 가지려 하기보다 오히려 버리고 내려놓을 줄 아는 강호의 방외인으로 살기 위해 60년을 넘게 산 전주권을 떠나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모르는 곳에서 장삼이사로 세월 따라 품위 있게 늙어가는 삶,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던가!
목 천 둑길 소실점을 향해 걷노라면 알알이 영글어 수확을 기다리는 나락의 짙은 냄새가 코끝에 어룽거린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또 어떤가? 광활한 공간의 심연에서 빛으로 번지는 적막은 거룩한 신성이자 우주로 연결되는 영원이다. 이 하늘 아래 나는 한없이 왜소해질 뿐이다. 문득 다가갈 수 없는 영원에 이르는 방편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몸서리치게 자각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떠오른다. 니체는 알프스의 실바플라나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세기적 사상의 영감을 얻는다. 바로 영원회귀에 관한 사유다. 그 영감의 계시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니체는 1주일간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한다. 나에게 이런 치명적인 영감은 언감생심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영원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내 녹슨 대뇌피질에 화두로 각인시켜놓고 두고두고 저작해 봄직하다.
만년 들녘은 콤바인의 왕복운동으로 텅 빈 공간의 영역을 넓혀간다. 밀레의 만종처럼 이 들녘의 황혼에 종소리 들릴 리 만무하지만 요즘 바짝 대오를 지어 비행이 잦은 철새들조차 먼 길 떠나고나면 저 허허로운 들녘은 몹시도 쓸쓸해질 것이다. 봄이 다시 올 때까지는.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