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문

2004 전북문화가 사람과 사람 <12>] 학자-작곡가로 음악가 길 걷는 신상호-지성호씨

작곡가 지성호 2004. 2. 15. 21:21

2004년 02월 15일 (일) 새전북신문 webmaster@sjbnews.com
예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투영된다. 혼 실린 창작의 산물을 토해내는 것도 예술이고, 가능성 있는 신예들을 예술인으로 길러내는 일도 예술활동의 한 모습이다. 창작물에 날카로운 비평의 눈길을 던지는 것 역시 두 말할 나위없이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두 명의 예술가가 있다. 신상호(56·전북대 음악학과 교수)·지성호(49·한일장신대 겸임교수). 한 사람은 오보에 연주자인 동시에 부단히 연구에 몰두하는 음악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빼어난 작품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작곡가다. 두 사람은 사제로 만나 동반자가 됐다. “제가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덕분에 신 교수님께 음악을 배울 수 있었죠. 교수님은 학자적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한 분이에요". 이들의 만남은 지성호 선생이 79년 늦깎이로 전북대 음악교육과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북대에서 시간강사를 했던 신 교수는 81년 전임교수로 임용됐고, 첫 졸업생인 지 선생이 지역 문화계에서 음악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스승과 제자로의 만남이 25년여의 돈독한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스승과 제자는 무슨. 이젠 친구에요, 친구.". 소탈한 성격의 신 교수는 ‘사제’라는 거리두기가 싫다. 제자라기 보단 작곡가로 자신의 분야를 튼실히 개척해가고 있는 음악인을 바라보는 든든함이 앞서는 탓이다. “부럽죠. 창의적인 영역에서 역량을 펼치는 모습이 좋아보여요.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의 혼을 실어 곡을 완성해내는 열정도 멋지구요". 신 교수의 눈에 비친 지성호는 ‘음악에 빠져버린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교단에 섰다가 작곡가의 길을 걷겠다며 직장을 뿌리치고 나왔을 때의 모습이 지금도 선해요. 음악에 대한 갈증이 유별났죠. 뭔가 일을 낼 줄 알았어요”. 신 교수는 격찬받은 ‘혼불’과 ‘오페라 정읍사’를 비롯해 지 선생의 무대가 있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객석을 지킨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날카로운 비평가인 셈이다. 지성호가 창작의 영역에서 지역 문화계를 누비는 사람이라면, 신 교수는 대학 울타리에서 음악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쉽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이에요. 도량이 넓으시죠. 실기영역에서의 연주활동이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연구실에서 가장 먼저 연습 소리가 새어나올 정도로 늘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죠. 학문적 깊이와 인문적 교양이 탄탄한 분이에요. 교육에 대한 신념도 투철하시구요". 지난해까지 전북음악협회장을 맡았던 신 교수는 지역대학의 음악교육과 문화풍토에 대한 걱정이 많다. “대학의 예술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어요.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지향해야 하는데, 학생수급이나 취직을 먼저 걱정해야 하니 말이죠. 지역 문화계 역시 제대로된 지원이나 관심이 없다면 제 역량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변변한 평론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것도 지역의 한계구요". 지성인 답게 음악환경에 대한 고뇌를 풀어놓는다. 해마다 삼인음악회를 이어올 정도로 음악적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신 교수는 음악에 대한 욕심 면에선 지성호 선생 못지 않다. 그러고보면 말 없이 묵묵히 실천하는 것까지 두 사람은 꼭 닮아있다. “제 색깔나는 오페라 한편 만들고 싶어요. 작업과 대면할 때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서지만, 버겁더라도 시작해야죠". “올해는 몇년전부터 구상해온 음악관련 책 출간계획을 실행해 옮길까해요. 늘 마음만 앞서지만, 한발 한발 내딛여봐야죠". 작곡가로, 학자로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며 음악현장을 누비는 두 사람의 인연이 계절과 함께 깊어만간다. /이윤미기자 6milee@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