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에 웬 헝가리?". 전주의 도심 끝, 평화동 아파트단지에서 순창 방면으로 10여분쯤을 내달리면 모악산 입구를 갓 지나 ‘헝가리'라는 구역푯말이 눈에 띈다. 아, 가만 보니 ‘헝가리'가 아닌 '항가리' 네.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모악산 기슭과 줄기를 따라 펼쳐진 완만한 평야지역인 이곳은 밭농사, 논농사 지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마을이었다. 적어도 이곳이 ‘예술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일화 하나 작곡가 지성호 교수가 항가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0년대 초의 어느날. 새벽잠을 깨우는 요란한 ‘뽕짝'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 지 교수는 오래지 않아 그 음악이 마을 이장의 방송을 알리는 전주곡임을 깨닫는다. 거슬리는 ‘뽕짝' 소리를 몇 차례 견디어내던 지 교수. 어느날 테이프 하나를 손에 들고 위풍당당히 이장 댁을 찾아간다. 그의 손에 쥐어진 테이프는 ‘비발디의 사계'. 이장 어른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고 가뿐하게 집으로 돌아온 지 교수. 하지만 그 후로 단 한번도 ‘비발디의 사계'는 들을 수가 없었다고. #일화 둘 ‘마이크 테스트~~. 마을 주민 여러분, 오늘은 풀베기 하는 날입니다. 이장댁으로 속히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뚜~~~뚜~~~'. 항가리의 첫 입성자 유휴열 화백. 물 탄 기름처럼 마을 주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집 앞 공터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빈둥거림으로 비춰지기 일쑤였고, 출근 조차 하지 않는 그를 ‘백수'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았던 시절. 이런 시선이 내심 부담스러웠던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예초기를 들고 나가 한나절 풀 베는 작업에 소진한 그. 그 후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 덕에 유 화백은 며칠을 몸져누웠다는 후문도. 한 평생 논밭을 갈구며 살아온 시골 농사꾼들과 소위 예술가들과의 이웃 사촌되기가 어디 쉽기만 했으랴. ‘그림쟁이 집', ‘딴따라 네'와 같은 시기어린 명칭이 ‘시인네', ‘화가네', ‘작곡가 선생네'로 순화되기 까지 항가리 사람들의 18년 한살되기는 고된 시집살이 못 지 않았으리라. 예술인들의 항가리로의 이주는 85년도로 거슬러 오른다. 서양화가 유휴열 화백이 도심의 부대낌이 싫다며 짐을 싸 마을로 들어온 게 그 시작이다. 손수 터를 잡고 마당에 줄을 그어가며 지었다는 유 화백의 집 외벽은 18년 세월의 풍파 만큼이나 낡아 있다. 유 화백의 권유로 90년대 초 항가리 생활을 시작한 한국화가 이철량 교수(전북대 미술학과) 그리고 같은 시기 손수 집을 지어 들어온 작곡가 지성호 교수(전북대 음악학과). 이 때만 해도 ‘예술촌'이란 이름보단 도심을 벗어난 전원주택의 느낌이 강했다. 그 후로도 예술인들의 항가리로의 입성은 꾸준히 이어졌다. 모악산 자락 옛 무당집에 ‘모악산방'을 차린 박남준 시인, 널찍한 연습실이 갖고 싶은 나머지 도심의 편안함을 내팽개치고 시골생활을 시작한 무용가 손윤숙 교수(전북대 무용학과), 항가리 입구에 너른 화실을 꾸린 꿩 그림의 대가 이형수 화백, 개인전시관 하나 마련하겠다며 도시생활을 뿌리친 서예가 김종범 선생. 이밖에도 전주예고 바로 아래 작업실을 차리고 들꽃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경태씨와 타악 연습실을 마련한 시립국악단 곽영종 단원 그리고 건축음향 전문가인 신영무 교수(호원대)도 항가리 예술마을의 어엿한 주인장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6년 전부터 옛 항가리 마을에 터를 잡고 천연염색의 맥을 잇고 있는 ‘예사랑'의 천성순씨다. 얼추 꼽아봐도 열 한명이나 된다. 이주 이유도, 시기도 모다 제각각이지만, 이쯤되면 ‘예술촌'이란 이름이 전혀 무색치 않다. “땅이 불렀나봐. 이 동네 꼭 들어오고 싶어라구요". 요즘도 틈만 나면 담을 쌓고, 나무를 심고, 집 외벽 돌을 쌓는 일로 소일하는 지성호 교수. 10년 넘은 자신의 집이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그는 누구보다 항가리 생활에 만족스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전엔 아파트 생활을 했었는데, 늘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었어요. 악상이 떠오르면 밤낮 없이 피아노를 두들겨야 하는데, 이웃사람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던지……". 개성 강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유휴열 화백 역시 마음가는 대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항가리 생활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단다. 그가 최근 천착하고 있는 거대한 조형물 작업 역시 항가리라는 공간이 아니었으면 감히 구상 조차 할 수 있었을까. 이에 비해 이철량 교수는 자연 예찬론자다. “늘 대하는 자연풍경이 그저 좋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색색이 바뀌는 계절 그대로의 풍광도 아름답고, 친근한 자연이 함께 있으니 절로 붓이 들어질 수 밖에요". 모악산으로부터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는 손윤숙 교수도 벌써 항가리 생활 4년째다. “30여평 연습실이 있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항가리가 너무 좋다"는 그녀. 예술인으로서 연습실 호사 한번 부려보는 게 어찌 과욕이랴. 굳이 끓이지 않고도 마실 수 있는 모악산의 지하수도, ‘진두환', ‘아무’, ‘똘똘이' 등 주인네를 꼭 닮은 강아지들도 항가리 사람들의 삶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따스하게 무르익어간다. 조만간 산 줄기를 타고 오를 봄 소식을 기다리며……. /이윤미기자 6milee@sjb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