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른 소나무 활활 타오르는 페치카, 은은한 황토 벽, 빛을 운무처럼 뿜어주는 지등, 햇살 고루 퍼지는 너른 창가와 잔잔한 음악 흐르는 곳에서의 차 한잔. 누구나 주인이고 싶고 손님이고 싶은 이상향의 찻집이 항가리에 있다. 4년 전 문을 연 쥐똥나무 울타리집 2층의 ‘풍경소리’, 항가리를 오가는 과객이 한 잔 차로 숨을 고르는 우물이면서 이 동네 예술인들의 근황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메신저이다. 풍경소리의 오랜 단골인 한국화가 목원 임섭수 씨가 들어서니 주인 김영희 씨(51)가 반색한다. “카운터와 주방 위치가 문가로 바뀌었네, 언제 이렇게 공사했을까.” “애 아빠가 쉬엄쉬엄 했어요, 처음부터 주방 위치를 잘 못 잡았다며.” 그 애 아빠의 이름은 지성호, 지난해 음악극 ‘혼불’로 격찬 받은 작곡가이면서 집도 짓고 지등 만들고 웬만한 가구도 척척 만들어내는 ‘미다스의 손’이다. 지성호·김영희 부부는 전주 완산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값비싼 장식품으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도시의 찻집보다 뭐든 직접 순수 만든 소박함이 좋아요. 창가에 앉아 음악 들으며 겹겹이 쌓인 산과 너른 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 져요.” 임 화백은 올해 연지회 회원들과 익산·군산지역 화가들을 초청하는 전시회와 미국 LA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하루 종일 전주 서노송동 화실에 묻혀 사는 임 화백은 스케치 소풍을 나서거나, 혼자서 바람 쐬러 지나칠 때마다 꼭 풍경소리를 들른다. 전주토박이인 김영희 씨는 처음에는 이쪽으로 옮기는 것에 반대했으나 지금은 근교가 주는 평화에 푹 젖어 있다. “잔병치레 잦았는데 구이로 오고부터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어요. 특히 찻집을 내면서 적당한 긴장이 생겨 더 건강해졌나 봐요.” “찻집에 매어 있어 답답하지 않으냐”는 임 화백에게 주인은 “원래 비사교적이고 집안에 있는 걸 좋아했다”면서 “그래도 이렇게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친교범위가 넓어졌다”고 한다. 풍경소리의 이색메뉴는 국수. 멸치로 국물을 내고 파만 간단히 고명으로 곁들인 장국과 실타래처럼 가지런히 말아 내 놓는 국수 맛이 일품이다. 개성있는 찻잔들과 페치카 위 모딜리아니 풍의 벽화는 서양화가 김충순 씨 작품. 그는 봄방학 내내 올해 고 3되는 아들과 늘 풍경소리를 들렀다. 또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 한지공예가 김혜미자·신경자, 사학자 나종우 교수와 항가리 예술가들이며 박남준 시인은 늘 이곳에 들러 우편물을 찾아간다. 연중무휴이던 풍경소리는 주인의 건강을 염려하는 손님들의 강권으로 이달부터 매주 월요일 쉬기로 했다. “쉬는 날 뭐 할거예요?”하는 임 화백에게 “사고 싶은 그릇도 구경하고 테이블에 놓을 꽃도 보러 가고, 찻집 걱정 없이 천천히 다녀 볼래요”하며 주인은 웃는다. /김선희기자 sunny@sjb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