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능소화

작곡가 지성호 2015. 7. 26. 23:23

 

 

 

 

 

 

요즘 같은 염천엔 꽃들이 드물다. 이때쯤 잎들이 울울하게 메숲진 진록의 그늘에 보란 듯 피는 꽃이 능소화다.

늙은 호박 속처럼 주황으로 주렁주렁 무리져 기세 좋게 피어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숭어리가 뜨거운 태양을 향해 오연하게 고개를 들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침이면 패잔병처럼 떨어져 뒹군다.

옛날에는 사대부집안에서만 이 꽃을 볼 수 있었단다.

한잎 두잎 시나브로 떨어져 이우는 것이 아니라 목을 떨구듯 일거에 떨어지는 모습에 선비의 청렴함과 올곧음이 서려있다해서 그렇다나?

그러니까 옛날 선비들은 보는 대상에 심상을 투여하여 인격화하기를 즐겨했단다. 대표적 예가 윤선도의 오우가쯤 되겠다.

말하자면 오브제를 이미지로 대하는 것이겠다.

저것들! 어제는 태양을 정면으로 치받으며 오연했으나 오늘은 목이 부러져 밟히는 잔영을 보면서 나는 선비의 기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무위함을 생각한다.

모든 목숨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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