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염천엔 꽃들이 드물다. 이때쯤 잎들이 울울하게 메숲진 진록의 그늘에 보란 듯 피는 꽃이 능소화다.
늙은 호박 속처럼 주황으로 주렁주렁 무리져 기세 좋게 피어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숭어리가 뜨거운 태양을 향해 오연하게 고개를 들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침이면 패잔병처럼 떨어져 뒹군다.
옛날에는 사대부집안에서만 이 꽃을 볼 수 있었단다.
한잎 두잎 시나브로 떨어져 이우는 것이 아니라 목을 떨구듯 일거에 떨어지는 모습에 선비의 청렴함과 올곧음이 서려있다해서 그렇다나?
그러니까 옛날 선비들은 보는 대상에 심상을 투여하여 인격화하기를 즐겨했단다. 대표적 예가 윤선도의 ‘오우가’ 쯤 되겠다.
말하자면 오브제를 이미지로 대하는 것이겠다.
저것들! 어제는 태양을 정면으로 치받으며 오연했으나 오늘은 목이 부러져 밟히는 잔영을 보면서 나는 선비의 기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무위함을 생각한다.
모든 목숨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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