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프로젝트 7회째.
열흘에 걸쳐 날마다 한 권씩 소개하는 #굿프로젝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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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아이돌(idol)의 사전적 의미는 우상이다.
본래 철학적 용어로 우상을 뜻했던 말이 사전에서 수용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요즘 청소년들의 아이돌이 연예인이라면 나의 고교시절 아이돌은 당연 헤르만 헤세였다.
그러던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헤세를 들어보거나 읽은 사람 손!” 하면 그래도 60명이니 열 명은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헤세의 모든 것을 읽었다.
사실 나에게 학교공부는 마지못해 해야하는 억압의 족쇄로 작용했을 뿐이다.
낡은 배낭을 메고 머리카락을 날리며 세상의 변방을 떠도는 방랑자를 꿈꾸면서 그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고 보니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었던 고교시절에 우리는 어떡하면 사색하는 사람의 표정, 그러니까 철학자의 냄새를 풍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따라서 낡고 허름한 모자와 교복을 선호했으며 이제 막 거뭇거뭇해지는 턱수염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은근히 뿌듯하게 생각했었다. 어디 그뿐인가. 새 모자라도 살라치면 시멘트 바닥에 박박 문질러 기어이 낡게 만들어 쓰고 다녔다.
어떤 급우는 졸업하는 선배의 시큼한 냄새가 찌든 모자를 물려받기도 하였다.
요즘 청소년들이 물 빠지고 헤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심리에 닿아있다고나 할는지.
내가 헤세의 작품에 탐닉했다는 것, 그중에서도 <데미안>을 애독했다는 것은 나의 사춘기가 그만큼 요란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의 겉모습은 얌전했으나 내면은 늘 부유했고 요동쳤다.
되어있는 세상을 다소곳이 수용하지 못하고 독한 회의로 늘 격랑이 일었다.
자기만의 주체적인 공간을 세우는 성장 통 치고는 참으로 까칠하고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난해한 <데미안>을 내가 속속들이 이해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모호한 가운데서도 성장소설 <데미안>이 갖는
방황, 사랑, 고뇌, 회의 등이 가슴에 스몄을 것이다.
그때는 머리가 영민하던 때였으니까 몇 번 읽으면 암기됐던
<데미안>의 구절들이 지금껏 녹슨 머리에서도 술술 풀어져 나온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나는 나 자신 속에서 스스로 생성되어지는 모든 것에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에서부터
“새는 알을 까려고 바둥거렸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한 세계를 위해서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개를 펼친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에 이르기 까지.
요즘 발행된 책과 번역상 문장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때 암기한 글귀가 진리다.
그러다 대학에 출강을 하던 어느 날, 독문학자 이신구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분은 딱 봐도 독일의 철학자 같은 외모를 갖고 계신 분이셨고 클래식 마니아 이셨다.
저술하는 논문에 관해서 자문을 구할 일이 있으니 만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분의 논문 주제가 헤르만 헤세와 음악에 관한 내용이라는 말에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귀히 여기는 것을 같이 귀히 여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진한 동지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놀랐던 것이 헤세 문학의 비밀이 음악의 형식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나타 형식과 푸가 형식에 관해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논문이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헤세와 음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헤세문학의 원천이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헤세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환희심이 컸다.
헤세는 9살 때 부모에게서 갈색 바이올린을 선물 받았으며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를 외로이 여행하며, 연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대중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재능과 세계적 명성의 높은 밧줄 위에 서 있는 천재적이고 우아한 곡예사가 되는”삶을 꿈꾸기도 했다.1)
헤세의 청춘시절, 그의 우상은 니체와 쇼팽이었다.
쇼팽의 음악은 헤세 미학의 토대이고 서정의 소재이며 출발점이었다.
헤세는 탄복한다. “쇼팽! 이 음악은 향수와 동경과 회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2)
헤세는 쇼팽과 슈만을 좋아했던 것과는 반대로 베토벤이나 바그너, 브람스는 몰락의 음악이라고 싫어했다.
이런 면에서 헤세는 논리적이고 영웅적이고 압도적인 음악보다는 섬세하고 멜랑꼴리하고 동경을 자아내는 여성적인 음악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이신구 교수의 저서 <헤세와 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점은 헤세문학의 형식이 음악의 형식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을 세워 이를 논증하려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통해 <데미안>을 좀 더 확연하게 이해하게 됐다.
또한 기존의 내 형식론 강의록도 음악적 전문용어가 아닌 문학과 융합하는 풍성한 내용으로 수정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일부분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3)
Sonata 형식
소나타형식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3부 형식으로 된 기악곡의 가장 완성된 형식으로 일컬어진다.
제시부
상반된 두 주제가 제시된다.
신(神)의 세계에서 이탈되어 내향성의 정신과 외향성의 자연이라는 거대한 원초적 두 힘이 출현한다.
발전부
이 두 힘이 대립과 조화 속에서 발전해 나간다.
재현부
이 두 힘이 드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조화되어 신의 세계로 다시 귀향하는 것을 비유한다.
따라서 Sonata형식은 음양(陰陽)의 변증법적인 순환운동이며 이것은 노자의 도(道)의 운동과 일치한다.
노자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실체인 하나의 도에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둘이 생기며, 이 상대적인 둘이 조화됨으로써 세 번째인 화합체가 생기고 세 번째인 화합 체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했다.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爲和)
- 道德經42장-
그러므로 만물은 자체 속에 음과 양이 혼연일체가 된 화합체이다.
그러나 반대로 순환하여 복귀하는 것이 도의 활동이라고 했듯이(反者,道之動)
현상계의 만물은 다시 근원인 도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틀을 갖는 Sonata형식은 헤세가 <한 토막의 신학>에서 언급한 인간형성3단계와도 일치한다.
첫 번째 단계 : 선과 악이 분리되지 않은 낙원의 상태인 순수단계
두 번째 단계 : 선과 악이 투쟁하는 죄의 단계
세 번째 단계 : 선과 악을 넘어선 보다 드높은 순수단계. 즉, 정신의 영역인 신앙의 단계
여기서 신앙의 단계는 “우리가 우리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 우리의 인식너머 신, 혹은 그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거나, 혹은 그 상태에 도달한 단계를 말한다.
노자의 도와 기독교에서의 은총은 바로 이러한 궁극적인 단계에서 비롯되는 종교적 체험이라고 헤세는 말하고 있다.
헤세는 이러한 3단계 과정에 있는 인간을 두 상반되는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발전지향적 인간형(Der Vernünftige): 이성을 통래 세계정신과 끊임없이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형을 말한다.
경건형(Der Fromme): 초이성적인 세계질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과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갖는 형을 말한다.
이성형은 세계를 이성화 시키고 체계에 몰두하지만 경건형은 세계를 신화화시키고 신화에 몰두한다.
이성형이 교양과 지식을 사랑한다면 경건형은 자연과 예술을 사랑한다.
헤세는“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정신적 체험은 이성과 경외심의 끊임없는 화해, 즉 그 위대한 대립을 서로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고 말한다.
이것이 헤세의 근본사상인 단일사상(單一思想), 혹은 합일사상(合一思想)이다.
헤세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인간형성3단계 과정에서 양극을 자신 속에서 한 협주곡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정신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헤세의 작품은 두 주제 간의 변증법적 발전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Sonata형식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도의 운동은 물론 인간형성3단계와도 일치하는 Sonata형식은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삶을 미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가장 모범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완결된 형식에 대해 페리(H.Parry)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Sonata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에서 생성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에 하나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역사이며, 그 해결은 인간의 예술적 본능이 이룬 가장 성공적인 업적중의 하나다”
데미안
이신구교수가 그의 책 <헤세와 음악>에서 풀어가는 <데미안>을 다음과 같이 개략한다.
<에밀 싱클레어의 청춘 시절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왕래하면서 죄와 고뇌를 통해 두 세계를 드높은 차원에서 종합한 새로운 순수함, 즉 종교의 단계로 도달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내적 성숙 과정을 노래했다. 그러므로 <데미안>은 인간형성의 3박자 리듬은 물론 소나타 형식의 전개과정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진정한 자아의 표상’ 으로 싱클레어가 닮아가려고 노력한 인간 데미안은 누굴까?
그는 데미안은 바로 니체가 그 모델이고 융의 분석심리학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헤세가 니체와 융을 통해 얻은 것은 인간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삶의 원천인 원초적 고향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그 영원한 고향은 죽음과 재탄생의 근원인 ‘원초의 어머니’이다.
소설 <데미안>은 이러한 어머니의 위력에 대한 예찬의 노래이며, 인간 본질의 뿌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우러난 노래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인간 근원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 상(像)의 마력(魔力)은 음악의 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마성이 바로 에바 부인이고 <데미안>은 어머니의 안내자이며 메시아라는 것이다.
<헤세와 음악> 68쪽에서부터 81쪽에 이르는 <귀향 소나타>는 데미안을 Sonata형식과 견줘 분석을 시도한 부분이다.
내가 대학원과정에서 가르치는 <음악분석>은 음악을 음계와 선법, 조성, 선율, 형식, 화성, 리듬과 박자등으로 완전히 분해한 것을 모든 미사여구적 형용사를 다 제거하고 오로지 과학적 용어로 정리 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의 분석도구는 셍커의 구층 분석법(layer analysis )같은 것들이다.
시계공들이 시계를 완전히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어야 시계를 다룰 수 있는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헤세와 음악>에서의 분석은 어디까지나 문자로 구성된 문학안에 머무른다.
한 예를 들자면
“싱클레어는 데미안, 즉 무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는 마성의 음에 의해 인류의 원초적 어머니와 일치하여 자기 완성을 이루게 된다. 원조에서 이탈된 소나타의 상반된 두 주제의 조성은 많은 전조를 거쳐 다시 원조로 귀환해 최상의 신적인 화음을 이루었다.
즉, 어머니 신, 그 신의 아들 데미안,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성스러운 화성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는 외적으로 기독교적인 음조를 띠고 있지만 그 속에는 기존의 기독교적 전통을 파괴하고 새로운 탄생을 바라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배음이 강하게 흐르고 있다....”6)
기호로만 머무는 악보가 연주라는 실천 행위를 통해 음향으로 환원되면 죽은 음표는 살아서 노래가 된다.
그 노래는 아우라를 풍겨 공간의 성분을 바꿔 놓으며 듣는 사람의 심성을 뒤흔든다.
이신구 교수의 <데미안>분석은 이 음향으로 실현된 아우라를 예리한 메스로서가 아니라 문학적 용어로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묘한 흥미를 끈다.
같은 음악을 놓고 접근하는 시각의 다름에 대한 흥미일 것이다.
아무튼 헤세와 데미안에 대해서 깊이 천착하고 싶다면 필히 읽어야 할 책으로 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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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신구/헤세와 음악/24쪽
2) 같은 책 26쪽
3) Sonata형식에 관한 내용은 같은 책 63-65쪽의 내용을 근간으로 첨삭한 것이다
4) 같은 책 66쪽
5) 같은 책 68쪽
6) 같은 책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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