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제 막바지다. 오후 5시면 벌써 모악산 자락에서 어둠이 몰려와 동네를 삼키기 시작한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섬뜩한 냉기는 집집마다 서릿발 같은 위리안치를 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킨다. 배고픈 길냥이만 도둑처럼 돌담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언제나 이 시간이면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차례차례 문단속한다. 하루의 빗장을 거는 것이다. 12월 메모난을 살펴보니 해야 할 일이 두 건만 남았다. 하나는 내년을 온통 이 일에 매달려야 할 작곡에 관한 계약 건이고 하나는 송구영신의 연례적 일정이다.
이렇게 2020년도 서서히 빗장을 걸 시간이 되었다.
올 한 해의 나를 돌이켜 보건데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소나무를 전지하다가 가지가 부러져 5미터 아래로 추락한 사건이다. 다행히 정신 줄을 놓지 않고 뾰족하게 날선 정원석을 비켜 발부리부터 착지했지만 그 충격으로 그만 척추 3번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이 사고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119와 대면한 첫 경험이 되었다. 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내 체온을 쟀다. 고압전기에 감전된 듯 엄청 큰 충격으로 오그라드는 두 발을 바라보며 짐승처럼 고통을 뱉어내는 내게 여성 대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이마에 체온계를 댈 때, 나는 그 경황에도 그녀의 약간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감지 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 것 같았지만 두려움이 비친 그녀의 눈빛에서 119직업의 어려움이 전달됐다.
이들의 수고로 나는 빠르고 안전하게 병원에 옮겨졌고 응급실의 부산함속에서 119들은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게 병원을 떠나버렸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감사의 말도 전하지 못한 채 의료진의 손에 넘겨졌다. 긴급수술과 병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탁월함을 몸으로 겪으며 알게 되었다. 미국 같으면 엠블런스 한 번 부르면 천 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93세의 연로한 장모님이 미국에 사시는 관계로 내가 잘 아는 미국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119는 1원도 받지 않았다. 퇴원 후 재활 중에 나는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열심히 뒤져 사고 당시 나와 통화한 119대원을 찾아보았지만 매일 새로운 사건 현장에 투입되는 그들은 이미 두 달 가까이 지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그분들의 소속과 소방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한 번 꼭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전화를 받는 남자대원은 전주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촌스런 전주토박이 억양으로
“말씀만으로도 너무 고맙고요, 찾아오실 것 까지는 없고요, 회복이나 잘하세요.”
라는 듣기에 약간은 퉁명스런 말투와 함께 통화는 끊어졌다. 서둘러 갑옷과 같은 복대를 두르고 차에 오르려는 나를 아직 무리니 나중에 가자면서 극구 말리는 아내를 겨우 달래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서 소방서를 향했다. 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허리에 시린 통증이 전달됐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화를 하니, 사고 난 날 나와 통화를 유지한 여자대원이 나왔다. 나와 아내를 보더니 가까스로 기억이 나는 모양인지 무척 반가워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김영란 법에 저촉이 되니 사온 물건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옥신각신 끝에 마당에 던지듯 놓고는 차에 올랐다. 백미러를 보니 그녀는 난감한지 손조차 흔들어 주지 못했다.
여기가지 쓰고 보니 갑자기 요즘 보도되는 검찰 관련 뉴스가 떠오른다. 청담동의 룸살롱이라는 데서 향응을 받은 검사들은 담당 검사의 신묘한 계산법으로 95만원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를 면한 사건이다. 그 유명한 김학의 사건도 그렇고 그들의 기소독점주의는 다분히 선택적으로 작동되나보다. 말로 뱉기에도 불편한 용어인 ‘개돼지’들은 단돈 몇 만 원의 인사치레조차 법의 제재가 두려워 떠는데 정작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신성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안하무인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의 무소불위의 힘을 당연하게 여기고 여기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규범적 기대를 위반한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려야 당연하지만 세상인심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만은 그 힘에 기대야 위급 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기심의 발로일까? 참으로 이해불가다.
올해 성탄절은 아주 무겁고 우울한 최악의 성탄절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검찰 권력과 사법 권력은 자신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깨려는 대통령에 맞서, 보란 듯 법을 빙자해 조롱하고 있는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권위주의시대에는 그렇게도 권력에 맹종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질펀한 향응의 현장에서 젊은 영감들은 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자동문처럼 스르륵 열리는 권력의 쾌감에 이들은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더욱 견고히 높게 쌓고 올라오는 사다리를 어떡하든 좁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들만이 누리는 특권의 아성이 다이아몬드처럼 굳고 빛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진정 모르는 것이 있다. 이 적나라한 욕망의 공간에 고상한 품성이 자리할 자리는 없어 보인다.
나는 한 해의 막바지인 요즘, 다시 한 번 생각하거니와 내 나이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을 놓고 감사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마당을 쓸 듯,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실존의 성취야말로 오빌의 금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육사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했다. 뭇 생명들은 이 춥고 음산하고 땡땡 언 겨울을 동굴 속의 네안데르타르인처럼 인내하며 지내야 한다. 무지개와 같은 꿈이 없이는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순식간에 찬란하다 순식간에 스러져 버리는 덧없는 무지개가 아니라 강철 같은 무지개를 꿈꿔야만 이 혹독한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